이은선 시집 평범한 날들의 시학 삶을 응시하는 느림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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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시집 평범한 날들의 시학 삶을 응시하는 느림의 시학

‘평범한 날들의 시학’이 건네는 느림의 언어 –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인의 사유 코드 4가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 소음의 홍수 속에서, 이은선 시인의 신작 시집 『평범한 날들의 시학』(반달뜨는꽃섬)이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화려한 서사도, 격정적 감정도 없다. 대신 이 시집은 커튼 자락 너머의 빛, 벽에 남은 시간의 주름, 깨진 화분의 숨결 같은 삶의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근원적 응시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 시집은 단순한 일상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이 멈춤과 느림을 선택하여 삶의 진정한 리듬을 되짚는 태도는 지금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정서적 미학이자 철학적 행위로 읽힌다. 그렇다면 이 시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건네고 있을까? 다음의 네 가지 감상 키워드를 통해 그 의미를 곱씹어보자.


1. 사라지는 것들을 부르는 언어 – 존재의 미미한 잔향을 기록하다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먼지가 피어난 시간, 금이 간 벽의 무게, 낡은 문고리의 침묵에 주목한다. 이은선 시인은 사물이 말하는 법을 잊은 우리에게, 그 고요한 목소리를 다시 들려준다. 예술평론가 윤성대는 “사물을 다루는 시는 존재의 불안을 마주하는 방식”이라 평가하며, 이은선의 시를 그 대표적 실천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인의 시선이 단지 과거를 회고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사라짐의 흔적을 통해 우리 존재의 생물학적, 시간학적 감각을 되묻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은선의 시는 퇴색된 사물의 존재론이며, 독자는 이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2. 상처를 기리는 방식 – 애도가 아닌, 잔존의 빛을 조명하다

이 시집의 상실 서정은 통상적인 비통과 애도의 틀을 벗어난다. 대신 시인은 깨진 항아리나 조각난 화분에 깃든 생명을 통해, 결핍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남은 것들’의 존재론적 가치를 보여준다.

“사라짐보다 살아 있는 것들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 이는 시적 성숙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상처를 감싸는 새로운 형식의 헌사다. 시인은 반복적으로 존재의 균열에 침묵하지 않고, 거기서 생긴 틈을 통해 빛이 새어 들어오는 광경을 묘사한다. 독자는 이를 통해 ‘슬픔을 견디는 방법’이 아니라, 상실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3. 응시와 침묵의 윤리 – 빠른 세상에서의 반시계적 감각

이은선의 시는 소란하지 않다. 그는 묻지 않고, 기록하기보다 기억하려 한다. 이 낮은 톤의 속삭임은 독자의 내면으로 향하는 감정 통로를 열어준다. 특히 스마트폰의 알림 속도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이 시는 예술로서의 시간, 침묵의 공간, 응시의 감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상기시킨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느림은 관계를 회복하는 첫 번째 행위”라 말했다.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바로 그 행위의 문턱에 독자를 세운다. 시집 속에서 우리는 질서정연한 정적을 통해 풍경을 다시 읽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4. 시의 철학을 출판 문화에 입히다 – 반달뜨는꽃섬이라는 문학 공동체

『평범한 날들의 시학』이 더 특별해지는 이유는 그 정서에 공명하는 출판사 ‘반달뜨는꽃섬’과의 협업이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소음보다 사유의 침묵을 출판 전략으로 삼은 이 출판사는, 시를 또 하나의 삶의 형식으로 제안한다.

그들의 모토는 한 줄의 시가 한 시대의 침묵을 흔든다는 것. 이은선의 시는 그 명제를 실현하며, 사용되지 않는 말들의 부활, 사라진 감각의 환기, 잊힌 사유의 복원을 시도하는 예술 행위로 자리 잡는다. 시집은 단지 읽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가 건네는 미묘한 진동에 귀 기울이는 훈련장이다.


요약하자면,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는 삶의 속삭임을 건넨다. 자극 없이 남은 감각을 돌아보고, 침묵 속에서 감정의 결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이 시집을 통해 가능해진다.

이 책을 보다 풍요롭게 체험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문화적 실천을 제안한다:

  • 매일 한 편의 시를 필사하며 차분한 감각 되찾기
  • 집 안 구석의 오래된 사물을 관찰하며 나만의 시적 언어로 기록하기
  • 시집 속 이미지에 공명하는 사진을 찍어 느림의 시선 훈련하기
  • 비슷한 결을 지닌 시인 류시화, 에세이스트 황경신 등의 작품으로 감수성 확장하기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독자를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걷는 사적인 산책으로 이끈다. 먼지가 내려앉은 사물 앞에서 문득 멈춰선다면—그 순간이 바로 시인의 시선과 만나는, 조용한 기적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