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해체』, 일과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책 – 문화 큐레이터가 읽은 정체성 재구성의 미학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로 존재할 것인가?” 이간극 있는 질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두드린다. 화제의 신간 『커리어의 해체』(신세웅 지음, 좋은땅출판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AI 기술의 비약적 성장, 데이터 기반 해고, 사라지는 중간 관리자. 예전의 ‘커리어 경로’는 더 이상 우리를 안내하지 않는다. 과연, 일은 여전히 우리의 일부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는 어떤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
이 책은 커리어를 단지 직업적 성공 혹은 사회적 위치의 축적이 아닌, 문화적 구조물로 해석하는 지점에서 기존 자기계발서나 경영학 서적과의 결을 명확히 달리한다. 정체성과 일을 분리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언어로 재조정하는 ‘해체의 미학’이 이 책의 진짜 메시지다. 저명한 HR 전문가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신세웅은 보이지 않는 구조적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매 페이지마다 실천할 수 있는 철학을 제안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일의 풍경은 어떤 지형을 그리고 있을까? 『커리어의 해체』를 통해 함께 탐색해보자.
1. 정규직의 환상, 기술이 삼킨 신기루
책의 초반부터 신세웅은 AI가 단순히 산업의 자동화를 이끄는 기술이 아니라, ‘은폐된 구조조정’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정규직 채용은 줄고, 중간 관리자라는 계층은 사라지며, 데이터가 사람을 평가하고 해고까지 지시하는 시대.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생존 그 자체의 방식이 바뀌는 문명의 전환기적 징후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통찰이 단순한 위기 경고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에 대한 이해 실패가 만들어낸 경영 구조의 한계를 겨누고 있다는 점이다. 한 HR 평론가는 "이 책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중심 조직론의 재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2. 커리어의 문화사: 개인이 아닌 시대가 만든 이야기
‘커리어’라는 단어 뒤에 붙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시대적 산물인지 깨닫게 된다. 저자는 중세 길드, 산업 혁명의 평생 고용체제 등 일을 둘러싼 제도가 어떻게 우리의 자아 개념을 규정해왔는지 탁월하게 추적한다. 이러한 역사적 통찰은 지금의 커리어 불안을 단순히 개인의 무능력이나 준비 부족이 아닌, 체제 해체 이후의 문화적 공백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 지점은 특히 자주 이직하거나 끊임없는 경력 전환 속에 지친 MZ세대에게 값진 성찰 거리를 제공한다.
3. 균열 이후의 풍경, 고유성과 다중 정체성의 힘
책 후반부는 실천적 제안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전략은 ‘고유성(uniqueness)’과 ‘다중 정체성(multiple identities)’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장에서는 기존의 '커리어 직선'이 아니라, 자기 서사를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복선형 경로를 제안한다. 특히 주목할 키워드는 ‘데이터 스토리텔링’. 이는 자신의 경험과 이력을 데이터화하고 서사로 구조화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AI 시대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능력의 측정이 아니라, 존재의 서술이 중요해지는 사회, 그 변화를 독자 각자가 준비하도록 독려한다.
4. 자기계발의 지평에서 철학의 언어로 도약하다
신세웅의 『커리어의 해체』가 갖는 미덕 중 하나는, 단순한 생존 매뉴얼이나 자존감 회복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직업을 갖는 형태”보다 “정체성을 세우는 본질”에 천착하라고 말한다. 그 언어는 철학적이며 구조적이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중심주의가 다시 등장하는 듯, 저자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지속가능성’을 향한 성찰적 회귀를 제안한다. 기존의 자기계발이 ‘성장’에 집착했다면, 이 책은 ‘전환’과 ‘통합’을 중시한다.
5. 커리어를 문화로 읽는 시대, 지금 필요한 독서
신간 『커리어의 해체』는 단지 노동의 불안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 작품은 커리어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사회적 신념, 제도적 기대, 심리적 부담을 문화적 구조로 독해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인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나아가, 지금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불확실성’이라는 감정이 단지 오늘의 문제가 아닌 시대 전환기의 문화적 징후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TED의 ‘The future of work’ 시리즈를 감상하거나, 나만의 커리어 에세이 작성, 혹은 디지털 정체성을 탐구하는 워크숍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중요한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닌, 내 서사의 재편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책 한 권이 우리의 좌표를 다시 설정할 수 있다면—그것은 이미 하나의 예술적, 철학적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