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 공연장의 소멸과 재생 – 공동체 음악 생태계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최근 영국 소규모 인디 음악 공연장(Grassroots Music Venue, GMV)의 기반이 유례없는 위기에 봉착하면서, 예술과 커뮤니티의 관계, 그리고 음악 생태계의 존속 조건을 묻는 문화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뮤직 베뉴 트러스트(Music Venue Trust)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폐쇄된 공연장은 단 9곳으로,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이는 회복이 아닌 ‘연명’ 수준에 가깝다.
생존률은 높아졌을지 모르나 여전히 반 이상의 공연장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구조조정과 고용 축소에 시달리는 예술 노동자들의 현실은 우리에게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오늘날 인디 음악 공연장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생태계를 지켜내는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공연장의 ‘존재’가 아니라 ‘조건’이 위협받고 있다
69개 GMV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익률 2.5%, 고용 인력 22% 감소는 생존 그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임을 드러낸다. 공연장은 이제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복합적인 위험 요소들—부담스러운 보험료, 예술 인력의 탈이탈, 인플레이션—속에서 언제든 파산할 수 있는 비정한 문화 현장이다. 무대가 아니라 예술 공동체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단지 영국의 현상이 아니라, 서울 홍대나 대전 원도심의 공연장 소식들에서도 반복되어 확인되는 세계 공통의 문화 자본 취약성이다.
수도권 중심화 속에 사라지는 지역성 – 라이브 경험의 붕괴
팬데믹 이후 급속히 심화된 수도권 집중은 라이브 음악의 지리적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지역 공연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의미 있는 투어는 없고, 관객과의 실질적 만남도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조적 모험은 로컬 차원에서 점점 불가능해진다. 도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가 강조했듯, 문화 생태계는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의 실험을 통해 진화한다. 그 실험이 이루어질 ‘공간’이 사라졌을 때, 실험도 함께 사라진다.
자발성의 한계, 기업 윤리와 정책 사이의 딜레마
런던 O2 아레나에서 시행 중인 ‘1파운드 문화 기부금’은 창의적인 시도지만, 그것이 복지정책의 대체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면 자칫 문화 재정의 책임을 개인과 팬덤에 떠넘긴 구조가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대중문화는 상업성과 공공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진화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관객들의 자발적 기부와 팬덤의 열정만으로 문화 기반을 지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특히 전체 시장의 66%를 점유하며 독점력을 행사하는 '라이브 네이션' 같은 기업이 여전히 무대 뒤에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GMV의 존속은 윤리와 법제화 사이에서 근본적인 권한 설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간’이 사라질 때, ‘기억’과 ‘공동 감각’도 함께 사라진다
예술사회학자 하워드 베커가 말하듯, 음악은 허공에서 독립적으로 탄생하지 않으며, 그것은 항상 특정 공간, 공동체, 물리적 인프라와 맞물려 생산된다. GMV는 단지 소리를 재현하는 곳이 아니라, 청중과 예술가가 감각적,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공동 감각(synaesthetic)’의 장이다. 이러한 공간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예술이 관객과 만나는 통로, 즉 '체험의 구조' 자체가 붕괴 중임을 의미한다.
위기 속에서 묻는 도시계획과 문화정책의 윤리
뮤직 베뉴 트러스트가 요구한 ‘에이전트 오브 체인지’ 법안은 단순히 소음 문제를 다루는 기술적 조처가 아니라, 공연장이 도시 내에서 어떤 권리와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이다. 이는 공연장만의 문제가 아닌 도서관, 독립 영화관, 비영리 전시공간과 같은 ‘비상업적 문화공간’ 전반에 해당되는 문제다. 포스트 브렉시트와 영국의 자국 중심주의 흐름 속에서 지역 공연장이 더욱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문화 인프라’의 미래를 묻는 새로운 문화정책의 윤리적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영국 GMV의 사례는 단지 국외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그 안의 문화 공동체가 어떻게 균열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현상은 한국의 홍대 공연장 폐업, 마포의 복합문화공간 위기 등과도 평행선을 갖는다. 무대의 사라짐은 곧 문화 기억의 소멸이다. 우리는 "음악을 보호하자"는 선언 이전에, 예술의 생산 조건을 보장해주는 도시 시스템과 공동체의 윤리를 먼저 되묻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지역의 작은 공연장을 방문해보고, SNS 인증 대신 감각적인 기억을 남기고, 동네에서 어떤 문화 공간이 폐쇄되고 있는지를 관심 갖고 관찰하며 그 원인과 대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관련 정책 변화나 공적 기금 시스템에 대한 토론이 오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문화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당신의 동네 구석에 있었고, 지금은 사라지고 있으며, 다시 만들어야 할 또 하나의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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