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향에 취한 서귀포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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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향에 취한 서귀포 일상

감귤 향이 배어든 기억, 서귀포에서 수집한 감정의 조각들

봄의 마지막 숨결이 부는 5월, 서귀포는 느긋한 청명함으로 여행자를 감싸안는다. 푸른 바다가 펄럭이는 창가에서 노란빛 감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순간, 시간을 잊어도 좋다는 내면의 작은 허락이 내려진다. 이곳에서의 여정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순간들, 그 안에 깃든 멈춤의 아름다움으로 완성된다.

조용한 골목에서 채운 감정의 스케치

서귀포 구도심을 걷다 보면 작은 돌담 너머 감귤 나무들이 얼굴을 내민다. 마을 안쪽으로 접어든 골목에선 아직도 천천히 볕드는 옛집 마루에 앉은 어르신들이 감귤청을 젓는다. 그 손끝에서 스며 나오는 시간은 서귀포만의 완만한 리듬을 품고 있다.

시장통 끝자락의 작은 가게 “하늬조각”에서는 지역 청년 작가들이 감귤 껍질로 수제 종이를 만든다. 빛바랜 오렌지 톤의 작은 카드에 적힌 문장은 “이 계절, 너의 마음이 평안하길”이라는 소망처럼 보여 마음 한켠이 뜨거워졌다.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의 정서가 깃든 무언가가 된 순간이었다.

오메기떡 한 점에 담긴 땅의 무게와 기억

유난히 비가 잦던 서귀포의 봄. 습기를 머금은 돌담 사이사이에서 피어오른 이끼와 물방울이 반짝였다. 그 오전, 흑돼지 거리 근처 작은 전통 떡방 “달기와”에서 만난 오메기떡은 예상보다 더 투박하고 따뜻했다.

차조로 만든 손바닥만 한 둥근 떡 안에는 팥앙금이 꽉 차 있었고, 겉은 콩가루와 깨가 풍성하게 더해져 있다. 서귀포의 습기 섞인 공기와 함께 퍼지는 고소한 떡 냄새는 그 자체로 풍경이었다. 단맛보다는 곡물의 본디 맛이 살아 있는 그 떡을 한 입 베어 물면서, 나는 이 땅이 얼마나 오래되고 단단한지를 감각으로 배웠다. 도시에선 흉내낼 수 없는 깊이가 그 안에 있었다.

감귤잼, 일상의 아침에 섬의 햇살을 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가방에는 감귤잼 한 병이 얹혀 있었다. 감귤 밭 옆 허름하지만 매력적인 로컬 카페 “밀감나무 그림자”에서 직접 만든 잼이었다. 보통은 달콤한 맛을 상상하게 되지만, 이곳의 감귤잼은 조금 다르다. 껍질까지 넣어 졸인 잼은 씁쓸한 여운이 남아, 매일 아침 토스트에 발라 먹을 때마다 바람이 불던 그날의 기억이 따라온다.

서귀포의 햇살이 머문 맛은 그저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당신의 일상에 스며든다. 여행 후 한두 달이 지나도, 그 맛은 도시의 속도 속에서 감귤밭의 느린 시간을 환기시켜 준다.

수집된 것들 속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

우리는 왜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고를까. 그것은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기억을 채집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서귀포에서 가져온 오메기떡, 감귤잼, 손글씨 엽서들은 모두 작고 사소하지만 그 이면에 공간의 기온, 사람의 숨결, 빛의 방향이 담겨 있다.

이곳에서 보낸 사흘이 내 안에 남긴 건 정확한 방문지가 아니라, 조용히 머문 공기와 낯선 골목의 표정들이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삶의 어떤 켜를 바꿔주는 미약한 힘이 되어 준다.

이제, 여행은 다시, 일상의 문턱 위에서

서귀포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감귤의 초록 향, 오름 위를 걷던 아침의 바람, 그리고 떡 안의 검정콩 같은 조용한 감정들. 그것들을 천천히 되새길수록 여행이란 단지 떠나는 일이 아닌, 내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당신 책상 위에 감귤잼 병 하나를 올려두고 매일 아침 하루에 한 번, 그 섬의 향을 떠올려보자. 또는 이번 주말엔 가까운 시장에서 차조와 콩가루를 사서 직접 작은 떡 하나를 빚어보는 건 어떨까. 여행은 계속된다. 서귀포의 방식으로, 느리게, 내밀하게, 나만의 호흡으로.

**햇살을 바르는 아침**

봄날의 서귀포에서 가져온 감귤잼을 한 스푼 떠올릴 때마다, **그 섬의 따스한 아침 공기와 등 뒤로 드리운 해풍의 기억**이 천천히 퍼진다. 햇빛을 머금고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위로 흐르는 잼은 단순한 조합이 아닌, 서귀포라는 시간을 식탁 위에 펼쳐놓은 감각의 재현이다. 한 입 머금는 순간, 정지된 듯한 골목의 오후와 귤밭 너머로 들려오던 낮은 바람 소리가 혀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감각은 잠들지 않는다**

이 작은 병 하나엔 감귤의 단맛만 있는 게 아니다. 로컬 농부의 손끝, 햇살을 품은 유리병, 숙소 냉장고 속 조용한 마음까지 담겨 있다. 여행은 마친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일상의 틈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서귀포의 시간은 끝나는 법이 없다.** 밖은 도시의 소음으로 빠르게 돌아가지만, 한 모금 커피 뒤에 숨어있는 섬의 향은 여전히 느리게 숨을 쉰다. 지금 우리가 진짜 원하는 여행은, 어쩌면 이런 식으로 은밀하게 일상 속에 돌아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