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대는 끝났는가 – 감정노동으로 소비되는 연애 서사의 재구성과 감정의 정치학
디지털이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오늘날, 사랑은 더 이상 고요하고 은밀한 사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스타그램 피드를 타고 흐르고, 카카오톡 알림음 사이를 헤매며, 한 편의 에세이 혹은 자기서사적 글쓰기를 통해 기록된다. Holly Riordan의 에세이, 「I Stopped Chasing You, But I Still Want You」는 이 시대 로맨스의 아이러니를 정제된 언어로 보여준다. 단순한 개인적 사랑의 상처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노동과 서사 권력의 불균형에 대한 비판적인 개입이자, 디지털 시대의 연애가 지닌 구조적 폭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 글은 ‘사랑을 쓴다’는 행위가 어떻게 사회적 실천이었는지를 되짚는다. 자기서사로서의 연애담은, 지금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고통의 재현이 아닌 감정을 재규정하는 문화적 행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친밀성과 감정 표현, 관계의 구조를 통찰할 수 있다.
감정노동화된 연애: 사랑은 누구의 수고로 이루어지는가
Riordan의 반복적 문장 – “내가 먼저 연락하고, 칭찬하고, 기다리고, 용서했다” – 는 단순한 개인적 미련이나 상실을 넘어, 관계 속에서 여성들이 감당해온 감정노동의 구조적 일상성을 드러낸다. 로랑 베르니에를 비롯한 감정사회학자들은 감정을 경제적 교환의 일부로 보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정은 ‘재현’되고 ‘퍼포먼스화’된다고 분석한다. 이 이론틀에서 볼 때, Riordan의 자기서사적 글쓰기는 감정이 사적이기보단 사회적 구성물임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자기서사에 담긴 이 감정의 이중성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피로한 노력과 감정의 과잉 투자 – 는 ‘고백’이 아닌, ‘고발’에 가깝다. 이는 더 이상 연애가 자율적 선택의 결과라 보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불균형을 환기시키며, 여성에게 사랑은 여전히 실천해야 할 노동임을 암시한다.
연애의 무대화: 디지털 친밀성의 환상과 통제
SMS, DM, 피드 업데이트. 사랑은 이제 서로의 존재를 클릭하고 추적하는 데이터적 관계 속에 머문다. Riordan이 “이젠 연락은 멈췄지만, 그의 SNS를 훔쳐 본다”고 서술하는 순간, 감정은 끊어진 대신 정보로 연장된다. 이러한 연애 방식은 현실보다 지속적이며 집착적일 수 있다.
비평가 이현우가 진단한 ‘하이브리드 친밀성’—일회적인 접촉과 지속적인 감상 사이를 배회하는 관계 양식—은 SNS가 조성한 감정생활의 양가적 단면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더 이상 내부의 진정성보다 외부의 감시와 반복을 통해 유지되는 스펙터클로 기능한다. 연애를 둘러싼 욕망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실현 방식은 점점 더 통제된 퍼포먼스에 가깝다.
연애 피로사회의 명암: 감정고갈과 자기실현의 충돌
‘연애를 안 한다’거나 ‘은퇴한다’는 선언은 단지 개인적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감정을 상품화하고 피로의 대상으로 만든 시스템에 대한 문화적 반작용이다. 사회학자 리오르 자크만은 “감정 에너지가 자기표현과 SNS 관리에 과도하게 분산됨으로써 친밀감이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연애는 더 이상 휴식이 아닌 과로의 영역이다.
Riordan은 자신의 감정을 갈아 넣으며 유지해온 관계가 “ 돌려받지 못한 수고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는 일방적 감정노동에서 기인한 관계 불평등을 직시한 것이며, 연애 자체에 대한 회의가 아닌, 연애 구조에 대한 재구성의 선언이다.
감정의 윤리와 서사의 주도권 되찾기
“이제는 네가 먼저 연락할 차례”라는 구절은 단지 ‘차례표’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 수고에 대한 교대로 읽히기 이전에, 감정 관계의 주도권을 재설정하겠다는 시도이자, 구조적으로 내면화된 성별적 감정책임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이는 수전 손택이 말한 “감정의 윤리”, 즉 감정은 일방적 헌신이 아닌 평등한 교환이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Holly Riordan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감정의 정치적 실천이다. 우리가 연애를 다루는 방식, 사랑을 표현하고 기억하고 잊는 방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서사의 등장은, 더 이상 로맨스가 문화적 신화로 유지되지 않는 시대에, 사랑을 다시 정의하고 재배치하려는 사회적 욕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연애는 단지 감정을 주고받는 사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사회 구조, 젠더규범, 디지털 기술과 맞물리며 구성되는 복합적 문화현상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사랑 역시 비평의 언어로 읽어낼 수 있는 대상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Riordan의 글처럼 연애 자체를 서사화하고 비판적으로 관찰하며 우리는 ‘사랑은 왜 이렇게 피곤한가’라는 질문을, ‘누구를 위해 피로한가’로 전환시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연애 피로를 주제로 한 에세이, 영화(<가장 보통의 연애>, <헤어진 다음날>), SNS 기반의 연애 상담 콘텐츠 등을 다양한 관점으로 비교 analyzing 해보자. 감정노동을 주제로 한 학술서나 비평서(예: 에바 일루즈의 『왜 사랑은 아픈가』) 등을 함께 읽는다면, 연애와 감정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소비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얼마나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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