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족 돌봄의 위기, 보건복지의 사각지대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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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족 돌봄의 위기, 보건복지의 사각지대를 보다

보이지 않는 간병 전선, 우리 모두의 일이 되다 – 군·보훈 가족 돌봄 위기에 대한 공중보건적 접근

대한민국이 맞이한 2024년의 보건 현실은 단순히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환자 생존율을 높였다는 낙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고령인구 증가, 만성질환 유병률 확대, 정신건강 위기에 따라 지금 우리 사회는 ‘돌봄의 무게’와 싸우고 있다. 특히 군인과 국가유공자 가족의 간병 이슈는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보건의 사각지대다. 이들이 떠안고 있는 간병의 부담은 단지 개인과 가정의 문제가 아닌, 공중보건 정책과 국가안보, 그리고 공동체 회복력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생존 이후 시작되는 또 다른 전쟁, 간병

현대의학은 분명히 생명을 연장했지만, 그 연장의 끝에 기다리는 ‘간병’이라는 장기 레이스는 새로운 사회적 전장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 엘리자베스 돌 재단에 따르면, 2025년 현재 미국의 군인 및 참전용사 가족 중 간병에 종사하는 인구는 약 1,43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와 유사한 흐름은 한국에도 이미 도래했다. 6·25전쟁, 베트남전,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 주요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고령 국가유공자들은 만성질환과 정신적 트라우마가 복합된 상태로 고된 간병을 필요로 하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간병자, 아동까지 포함된 ‘그림자 인구’

RAND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 무급으로 간병을 수행하는 인구는 1억 명을 초과하며, 그중 약 550만 명은 아동 및 청소년으로 밝혀졌다. 이는 명확한 공공의 문제임에도, 개인적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간병인이 겪는 정신적 피로와 우울증, 사회적 고립은 비 단순 우려를 넘어 ‘간병 살인’이라는 극단적 비극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간병이 건강 체계 외부의 일이 아닌, 명백한 보건 이슈임을 직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간병은 국가의 의료 시스템 안에 존재해야 한다

엘리자베스 돌 재단과 미국 보훈처는 간병 가정을 단순지원이 아닌, 의료체계의 핵심단위로 편입시키는 모델을 추진함으로써 병원-가정 간 회복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보건소, 사회복지기관,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간병인의 건강권과 휴식권까지 포괄하는 방식을 실현 중이다. 한국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도 유사한 방향성이 있으나, 실질적 실행력과 중심 모델 부족으로 갈 길이 멀다. 간병은 이제 '정책 도입 여부'가 아니라 '정책 실행 수준'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간병은 곧 국가안보, 그리고 경제 기반의 문제다

돌봄이 안정된 가정일수록 전역 군인의 복귀 및 자녀의 군 복무 의향도 높다는 연구 결과는, 돌봄이 단순한 가정문제가 아닌 국가안보의 기반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무급 간병 활동의 경제적 가치는 연 119조~487조 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국가건강보험 지출 항목에 영향을 줄 만큼 거대한 규모다.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보건 시스템을 지향한다면, 간병 가정을 공공 정책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 행동은

간병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제도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참여와 인식 변화도 중요한 축을 이룬다. 다음과 같은 행동은 지금 우리 각자가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 가족 중 간병인이 있다면, 그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공공지원을 연결하자.
  • 간병 부담을 1인이 짊어지지 않도록 가족 회의를 통해 역할을 재구성하고 공평하게 분담하자.
  • 보건소가 운영하는 돌봄 체험 교실, 간병자 휴식지원 프로그램 등 지역 사회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자.
  • 건강보험공단, 지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간병 관련 최신 정보와 지원 정책을 정기적으로 확인하자.

이대로 20년 뒤 우리의 건강 수명은 보장될 수 있을까? 돌봄 위기에 귀 기울이고, 간병 가정의 삶이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때다. 작은 생활 습관 하나가, 한 사람의 우울과 고립을 막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 그 변화는 바로 오늘 우리 각자의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